
흑화_또봇C & 오혜라
by. 서챤
대도시는 오늘도 평화로웠다. 처음 또봇이 나타난 뒤로 수년이 지난 시간동안 수많은 악당이 나오고, 또봇들의 활약도 셀 수 없이 많아졌다. 그 날의 악당 또한 그동안 처럼 그저 지나갈 뿐인 작은 재앙이었어야 했다. 그래야했다.
대도시의 경찰 한 명이 사라진지 어느덧 보름 째, 최근 활개치고다니는 악당이 끌고갔다는 것을 목격했다하는 제보자의 증언을 마지막으로 그 어떤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대도시 전체가 술렁거렸거니와, 그 소속의 지구대는 계속 침울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연일나오는 부정적인 기사에 더욱이 침체되어가는데, 또봇 C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오늘로 며칠째더라, X?"
"이주는 족히 넘었음. C가 어서 기운을 차려야 할텐데 걱정임."
오혜라의 실종은 또봇 본부에도 상당히 큰 타격을 주었다. 따지고보면 대도시의 소식은 오혜라를 통해 오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이다보니 어떠한 정보든 빠르게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또봇 C의 파일럿이었다. 그의 빈자리는 타격이 꽤나 컸다. 그리고 그건 C가 가장 클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파일럿이 사라졌다. 최초의 또봇의 목적은 가족을 지키는 것. 또한 주인의 안전을 지키는 것. 또봇 C는 또봇으로서 할 일을 수행해내지 못한 것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질책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위로를 해주었지만 C, 본인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렇게 실종 첫 날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로봇이라 흘릴 수도 없는 눈물을 소리로 흘려보내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슬퍼할 수는 없는 노릇, C는 자신이 경찰또봇이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 다시 일어섰다. 급한 경우에는 제 파일럿은 아니지만, 다른 또봇의 파일럿들에게 명령을 받아 일을 하기도 했다. 오혜라가 없어도 또봇으로서 대도시를 지키는 임무는 착착 수행해갔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이외의 시간에는 또봇본부에서 다른 또봇들과도 어울리지 못한 채 혼자 멀뚱히 있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Y나 D가 C를 달래기 위해 무단히도 애를 썼지만 C는 잠시 풀어진 듯 하다가도 다시 조용해졌다. 여러번을 반복하자 또봇들 사이에서는 '그냥 내버려두자.'라는 결론이 났다.
"진짜 환장하겠네! C를 어떻게해야 힘내게 할 수 있는거야?!"
"슬퍼, D... 낮아, 분위기..."
"야들아, 우리까지 이렇게 침울해서야 쓰겄냐. C가 기운 차리려면 우리도 퍼뜩 힘을 내야된당께? 다들 쳐지지 말고~ 자, 자!"
다들 마음은 같았지만, 쉽게 꺼내지 못한 말이었다. 네옹의 말은 맞았다. 슬슬 모두가 오혜라가 돌아왔는데 이런 분위기로 축 쳐져있으면 매우 슬퍼할거라면서 더이상 우울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로 했다. C또한 다른 이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을 깨닳고는 이따금씩 본부밖을 나가 떠돌아다녔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또한 C는 아무도 깨어있지 않는 밤이 되면, 무조건 밖으로 나섰다. 그 날 이후로 C는 수면모드에 들어선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에너지가 다 닳을 때까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대도시 구석구석을 다 순찰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오혜라와의 추억이 없는 곳이 없었다. 여기는 처음으로 다 모은 쿠폰으로 치킨을 시켜먹었던 곳이고, 여기는 오혜라와 C가 함께 처음으로 범죄자를 잡았던 곳이고... C는 차체를 멈춰세웠다. 긴 적막 속에서 C는 무한한 공허함을 느꼈다. 그리고, 마인드코어의 빛이 점점 죽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쿵.
갑작스런 소리였다. 바로 건너 골목에서 꽤 큰 타격소리가 났다. 규모가 꽤 큰 싸움인 것 같았다. 평소 이 시간이면 가끔 이런 일이 있었다. C는 한숨을 쉬며 그 소리의 근원지로 갔다.
"지금 무슨 일인가, 이 새벽에 싸움을..."
"C."
C는 그대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오랜만... 인가? 잘 있었어?"
C의 앞에는 사라진 오순경이 있었다. 아까의 큰 소리는 무엇이 낸 건지 보이지도 않았다. 오혜라가 C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갔다. C는 주춤주춤 물러가기 시작했다. 왜? 그토록 기다리던 오혜라인데도, C는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오순경이... 맞는것인가? 췩."
"그럼, 맞지.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반갑다!"
자신을 피해가는 C를 아랑곳하지 않고 혜라는 C에게 계속해서 다가갔다. 뭔가 이상했다.
"오순경, 납치당한게 아니었던 건가? 모두들 오순경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이상, 췩!"
"C, 나는 괜찮아. 그보다 놀라지말고 들어줘. 부탁이야."
혜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뒤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인가 보려 몸을 들썩거리자, 어느새 커다란, 검은 형태의 로봇들이 뛰쳐나왔다.
"오순경! 뒤에...!"
"경찰은 그만두기로했어."
검은 로봇들이 오순경 뒤에 우뚝 섰다.
"지, 지금 뭐라고..."
"나도 처음엔 그냥 납치 당한 거 였지. 맞아. 하루 이틀은 무섭더라. 그런데, 저쪽에서 나한테 뭐라했는 줄 알아? 또봇을 배신하고 자기와 함께 일하재."
"..."
"듣자마자 화가나서 무슨 소리냐고, 절대 그럴 일 없다고. 경찰한테 그런 소리가 통할 것 같냐고 했지. 그리고 박사님들이나 파일럿 애들한테 등진다니... 상상할 수도 없었어."
줄줄이 나오는 혜라의 진심에 C는 그저 벙쪘다. 그동안 그의 또봇으로 있으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런데 또 시간이 지나니까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거 있지. 경찰로 있으먼서 내가 당했던 부당한 일들, 남들한테 무시당하는... 언제나 누군가의 아래로 깔보여지는 오순경... C, 내가 이상한 것 같아?"
C가 또봇으로서 파일럿인 오순경과 있으며 느꼈던 것은 많았다. 하루 24시간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공적이 빼돌려진 것도 한 두번이 아니고, 항상 잡일 담당에 고된 일만 골라서 하는데, 또봇 파일럿 일까지. 일을 마치고 가는 곳은 난방도 제대로 되지않는 옥탑방. 돈 없는 가난한 사회초년생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또봇들과 박사님들이 싫진않아, 하지만 나는... 내가 지켜야하는 대도시가 싫어졌어. 그런데 C, 너는 대도시의 경찰 또봇 이잖아? 널 섣불리 데려갈 수가 없었는데 이렇게 마주쳤네."
혜라의 눈은 그 어느때보다 진지하고, 또렷했다. 이전의 오순경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이 걸을 길을 선택한 오혜라의 모습이었다.
"아직은 가볍게 돕고만있어. 실은 자기도 내가 정말 꼬셔질 줄은 몰랐나봐. 내가 순경일 하면서 얻은 여러 정보도 있고 하니 대충 골라낸 것 같은데... 당첨이었지."
"지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오순경. 이상, 췩."
"여기까지야. 더는 없어. 나는 그래서 대도시를 등질거고, 그래서 오순경은 또봇의 무능함에 사라진 경찰으로 묻어두고 다시 살아갈거야."
그리고는 한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C는 혼란함에 감히 어느 말도 꺼낼 수 없었다.
"C...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물을게. 계속 내 또봇이 되어줄래?"
"그, 그런..."
"나는 네 파일럿이잖아."
"본인은, 대도시의..."
"C, 부탁해!"
C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작 몇 분만에 너무 많은 일들이 또봇C의 앞에 일어났다. 오혜라를 발견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어떡할래, C?"
그 날 새벽, 사라진 대도시의 순경을 따라서.
그 또봇마저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