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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 Whiskey

※엄브렐라 아카데미의 타임라인을 따라가지 않으며

라일라-핸들러, 디에고-가족들은 원작 관계를 차용합니다.

쿵-. 디에고는 머리가 띵함을 느꼈다.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의 앞에 있는 상대는 누구인지.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붕 뜨는 것 같았다. 상대방은 디에고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며 귀에 속삭였다. 이건 어때? 디에고는 상대방 질문의 의도조차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손길은 곧 목덜미로 넘어가 디에고를 끌어당겼고, 디에고는 마치 홀린 듯 상대의 어깨에 머리를 묻었다.

 

 

 

“여기 조금만 더 있어 줘...”

 

 

 

디에고가 웅얼거렸다. 상대방은 디에고의 요청에 잠시 멈추곤, 곧 그를 품 안에서 떼어냈다. 디에고의 손이 힘없이 떨어져 내려갔다. 그리곤 상대는 디에고의 팔에 걸쳐져 있는 노란 하와이안 셔츠를 다시 끌어올려 주었다. 디에고는 그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눈이 점점 흐려지더니, 곧 상대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대로 소파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되었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보자고, 마초 맨.”

 

 

 

상대방은 금세 깊이 잠든 디에고를 보며 미소를 흘겼다. 그리고는 자신의 소파에 있는 재킷을 주워들어 제 어깨에 걸치더니 그대로 방안을 나갔다. 신나는 재즈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 틈을 지나서 나간 상대방은 주머니에서 ‘말보로 레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더니 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는 숨통을 틔우듯 담배를 빨아들였다가 내쉬었다. 하아. 저런 말만 안 했어도. 상대방은 오늘 막 파티에서 만난 디에고라는 사내를 생각해본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연거푸 술만 마시던 그는 위스키 온 더 락 석 잔에 뻗어버리고 만 것이다. 상대방은 서서 연락처 목록을 급하게 뒤지기 시작하다 파티 안에 있는 '핸들러'에게 연락해본다. 허탕이다. 이미 즐길 대로 즐기고 있는지 다섯 번을 전화해도 받지 않자 전화기를 주머니에 찔러넣고 담배를 던져 발로 밟아 꺼버린다. 그리고는 저 멀리 어둠 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화려한 패션- (그녀는 재즈 파티에 걸맞게 망사가 있는 모자, 크리지아의 크림색 블라우스에 갈색 트위드 스커트, 양모와 캐시미어 벨루어 혼방 코트를 걸치고 있었고, 까만 에나멜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핸들러는 파티가 다 끝난 즈음에야 양옆에 잘생긴 사내 둘을 낀 채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오다가 멈췄다. 전화기를 열어보자 부재중 전화가 6통이나 찍혀있었다. 발신인은 '라일라'였다. 그 즉시 핸들러는 잘생긴 사내 둘에게서 어깨동무를 풀더니 전화 발신 버튼을 꾹 누르며 먼저 휘적휘적 걸어갔다. 사내들은 약간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다 뒤돌아 걸어갔다.

 

 

 

"어, 라일라. 전화했어?"

 

"왜 아직도 안 오고 그래. 전화도 안 받고."

 

"그래서 지금 전화 걸었지!"

 

 

 

.

 

.

 

.

 

.

 

 

 

디에고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디 테이블에 부딪힌 것마냥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졌다. 자신이 어제 얼마나 거나하게 취했는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다행하게도, 그의 익숙한 집 천장이 보였다. 아무래도 간밤에 루서가 자신을 데려온 것 같다. 어제 옷차림 그대로 침대에 눕혀져 있었다. 셔츠에 코를 박고는 킁킁거리자 찌르는 알코올 냄새에 눈을 다시 찡그리곤 욕을 읊조렸다. 망할, 알코올로 아주 샤워를 했나보지. 기지개를 쭉 피고는 샤워라도 할 생각에 옷 몇 개를 주섬주섬 챙기곤 방으로 나와 아래층에 있는 욕실로 들어갔다.

 

 

 

구겨진 옷들을 대충 선반에 쌓아두고는 입고 있던 셔츠와 하얀색 티셔츠들을 훌렁훌렁 벗어댔다. 제가 즐겨 입는 까만색의 바지도 벗어던지곤 욕조 안으로 들어가 샤워기 물을 틀고 흠뻑 맞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줄기가 마치 디에고의 숙취마저 씻어내주는 해방감이 들었다. 디에고는 촉촉한 머리칼을 손으로 몇 번 훑다가 샴푸 몇 번을 짜 천천히 문질러댔다. 부드러운 거품이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머리에서 툭툭 떨어져 바닥에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디에고는 천천히 생각해본다. 거품... 어제 파티에서 누군가 샴페인을 터트렸던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샤워기의 물을 튼다. 잠시 하던 생각을 멈추곤 머리에서 거품이 빠지는 동안 타월에 바디워시를 짜고 기다린다. 물기를 머금어 반들거리는 몸을 천천히 문질러 닦아낸다. 어루만지는 손길, 샴페인의 거품... 눈을 감고 다시 그 생각을 이어가며 몸을 닦던 디에고는 어느 한 구석에서 멈춘다. 쇄골 쪽이다. 쌓인 거품을 닦아내자 까무잡잡한 피부 위에 명확하게 새겨진 키스 마크였다.

 

 

 

"...이게 대체 왜."

 

 

 

디에고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분명히 이전에는 없었는데, 자신이 술에 거나하게 취하고 나서야 생긴 거라면 분명히 어제 그 파티에서 누군가 새긴 것이 뻔했다. 그리고 디에고가 뒤늦게 알아챈 부분이 있다면, 분명히 루서가 봤을 거란 것이다. (물론 루서는 그 마크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진 않았다) 디에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차라리 낯선 타인이 봤다면 따지지도 않겠지만 일단 가족 중 하나가 봤다는 사실이 기분을 나쁘게 했다. 아무래도 루서에게 입 닥치라고 몇 번 말해줘야겠다고 다짐한 디에고는, 인제야 자신에게 그런 흉터를 남긴 사람이 누구일지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자신이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 파티는 유도라의 경찰 무전에서 엿들은 주요 인물이 모이는 파티였으니까. 그렇지만 그 주요 인물은 파티에 나타나지 않았고, 허탕을 쳤다는 마음에 술을 계속 들이켰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위스키 몇 잔을 더 마셨고, 그러다가 옆에 앉은 누군가... 그 누군가였다. 몇 번 대화를 주고받았다가 기억이 없으니까, 분명히 그 누군가일 것이다. 그러나 디에고는 곧 다른 난관에 봉착했는데, 그 누군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그 '누군가'는 특이한 억양을 썼고- (디에고는 타 지역에 나갈 일이 별로 없었으니 억양에 대해선 쥐뿔도 모른다) 되게 달콤한 꿀과 같은 향이 났다. 원래 사람이 한 감각을 잃으면 다른 감각이 발달한다곤 하던가. 그걸로 그 누군가를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디에고는 한숨을 쉬고 마저 물로 헹구고 욕조에서 나와 옷을 주섬주섬 다시 껴입었다.

 

 

 

"젠장, 대체 누구길래..."

 

 

 

샤워를 하면 그나마 좀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장담했는데, 오히려 고민을 떠맡은 느낌이다. 디에고는 머리에 수건을 얹은 채 밖으로 나갔다. 찾을 리가 없었는데도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그 누군가의 달콤한 향기가 단순한 걸 좋아하는 디에고를 처음으로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래서 술만 처마시면 안 된다는 거였는데... 디에고는 가장 주방으로 가 시리얼과 우유를 꺼내 들곤 한 그릇에 부어 퍼먹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숙취 때문에 열 숟가락을 넘기지 못하고 버렸지만 말이다. 디에고는 숨통이나 틔우자며 집 안을 초조한 듯 돌아다니다가 그대로 밖으로 나와 거리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차라리 공원에서 모이나 쪼아먹는 비둘기라도 보면 좀 괜찮아지겠지. 디에고의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오늘 밤 8시에 라플라스 앤 매켄지에서 무료 공연이 진!"

 

 

 

너무 빨리 달렸나보다. 벽에 포스터를 붙이는 사내의 어깨를 밀치자 사내의 가방에 있던 여러 포스터들이 굴러 길바닥을 내뒹굴었다. 당황한 디에고는 일단 사과부터 하고 포스터들을 주워주기 시작했다. 그들 중 몇 개는 달리는 차 바퀴에 구겨져 자국이 심하게 남았지만 말이다. 디에고는 그 사내에게 사과를 하다가 휘황찬란한 포스터의 내용을 빠르게 훑었다. 여기라면...

 

 

 

"저기요, 이 파티 진짜 하는 거예요?"

 

"그럼요. 안 그러면 내가 왜 붙이고 있겠어요?"

 

 

 

구겨진 포스터 때문에 미간을 좁히고 있는 사내의 등을 두어번 두드려주고 다시 재빠르게 걸어갔다. 공연이라면 음악이 있을 것이고, 그러면 술도 있을 것이고, 그럼 파티도 진행될 것이다. 디에고는 거기서 어제의 그 누군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아니, 적어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랬다. 공원에 들리지 않고 곧장 코너를 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온 디에고는 다시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어제 입었던 옷과 비슷한 착장으로 갈아입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디에고 자신도 몰랐다. 아마 클라우스나 파이브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본인은 죽을 때까지 놀림을 받겠지만 말이다.

 

 

 

시계를 보자 곧 8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라플라스 앤 매켄지라면 두어 블록 아래에 있는 레코드 가게였다. 종종 유도라가 있는 경찰서에 들리러 갈 때 지나가다 본 적이 있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인 그레이스에게 오늘은 집에 늦게 올 예정이라고 말해주곤, (그레이스는 알겠다는 듯이 미소로 응했다) 밖으로 나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갈 곳이 있다며 뒷좌석에 탄 클라우스를 내쫓고는 점점 촉박해지는 시간에 서둘러 공연장으로 향했다.

 

 

 

"아직 안 늦었죠?"

 

"여긴 마감 같은 건 없는데, 공연 시작이라면 안 늦었어요."

 

 

 

밖에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묻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간다. 낮 내내 숙취도 해소하지 못해서, 곧 다시 술 냄새를 맡자 헛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여기서 토하면 쫓겨날지도 모른단 생각에 연거푸 물만 들이키며 참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디에고의 절박한 기회에도 올 생각이 없는 듯해 보였다. 기대는 점점 실망으로, 그리고 절망으로 바뀌었다. 그럼 그렇지. 디에고 자신이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다가 저 멀리서 익숙한 억양이 들려왔다.

 

 

 

"어제 파티 즐긴 걸로도 모자라서 또 와야겠어?"

 

"당연하지, 아가야. 어제 네가 전화하느라 제대로 못 즐겼거든!"

 

"맨날 변명은 잘 하지."

 

 

 

분명히 그 목소리다. 그 억양이다. 알코올 냄새로 가득 찬 곳에서 디에고가 종일 찾아헤맨 달콤한 꿀 내음이 맡아졌다. 벌은 한 번 달콤한 냄새를 맡으면 절대 잊지 못한다. 마치 그런 것처럼, 그 상대가 테이블에 앉자 그대로 디에고는 어제 자신이 마신 위스키 두 잔을 시키곤 그녀의 옆에 앉는다. 그녀는 옆을 한 번 봤다가 디에고를 알아보곤 매우 놀란 표정을 짓는다.

 

 

 

"날 어떻게 찾았어? 기억도 못 하고 잠든 것 같았는데."

 

"잊을 수 없는 건 많지."

 

 

 

디에고는 제 티셔츠를 살짝 내려 옅어진 키스 마크를 보여준다. 그녀는 그것을 물끄러미 봤다가 아- 하고 탄식을 내뱉으며 웃곤 디에고 앞에 있는 한 잔을 뺏어가며 옅게 웃어 보였다. 능력은 좋네, 마초맨. 날 찾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거든. 그녀는 한 모금을 홀짝였다.

 

 

 

"마초맨이 아니라, 디에고."

 

"흠, 그 이름은 예상치 못했는데."

 

"그럼 네 이름도 얘기해줘야 하는 거지."

 

"라일라."

 

 

 

라일라는 디에고를 보고 피식 미소를 짓더니, 디에고의 목덜미를 제 쪽으로 끌어당겨 입을 맞추곤, 곧 자신의 입에 머금고 있던 쓴 위스키를 디에고에게 흘리듯 넘겨줬다. 순간 하루 만에 또 찾아온 알코올에 디에고의 몸은 진덜머리가 난다며 열렬히 항의했지만, 그와 반대로 디에고의 머리속에선 자신이 맛본 위스키 중에선 가장 달콤한 위스키라고 느껴버렸다.

 

 

 

"이름도 어떻게 라일락하고 비슷하담."

 

"그걸 노린 걸지도 모르지. 꽃말이야."

 

"그래선지 확실히 달긴 다네. 근데 아직 부족한데 말이야."

 

 

 

그렇게, 둘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 2020. 8. 21 ~ 2020. 9. 25 엄브렐러 아카데미 합작 -

@hawgu_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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