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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먹힌 자신

※주의_ 글이 우울합니다. 괜찮으신 분들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중 발췌-

 

 

 

벤은 자신의 몸에 있는 그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안겨주며 천천히 자신을 뚫고 나와, 마치 자신에게 기생하듯 꾸물꾸물 움직이며 고요히 자신의 명령을 듣는 게 싫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심장을 먹어치워 버리기 위한 예비동작으로 보였다. 벤은 사냥 당하는 사슴처럼 쫓기듯 살았다. 죽기 전까지, 평생을 그렇게 말이다.

 

그것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벤은 자신의 움직임이 맞는지 확인해야했고, 어쩌다 한 번 의도하지 않은 것이 섞여 있었을 때 벤은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좁은 구석에 욱여들어가, 자신의 우울함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그것을 경계했다. 경계하고, 또 경계했다. 날이 꼬박 새도록 그것이 자신이나 혹은 가족을 죽이지 않을까 지켜봤다. 결국 동이 트고 지쳐 잠이 든 벤으로 패배자는 결정되었지만.

 

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만약, 만약 그것이 의식을 갖게 되고 지식을 탐하게 된다면, 벤은 차마 그것을 견딜 수는 없었다. 더 영악해지고, 사악해져서는 올 것이다.

 

그것이 강한 걸 벤은 알았기에, 벤은 그것을 더 멀리했다. 벤은 그것으로부터 자신과 가족들을 지켜야했다. 그 괴물로부터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 건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해야했다. 자신이 하지 않는다면 가족들은, 가족들은...

 

그렇게 벤은 스스로를 옥죄었다.

 

그 바라지 않았던 상황이 생긴 건, 분명히 저번 임무였다. 벤은 종종 이유 없이, 이 모든 것들이 불안해졌다. 환한 미소로 그 불안감을 가리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날은 유독 그것에 대한 걱정이 극에 달하던 날 중 하나였다.

 

미션은 끝났고, 숨을 가쁘게 쉬던 벤은 거추장스러웠던 도미노 마스크를 저 멀리 던져버렸다. 땀과 피에 푹 절여진 벤은 도저히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후...”

 

무거운 숨을 도로 뱉어내며 벤은 연신 도리깨질을 했다. 집 가서 씻으면 되니까, 천천히 자신을 위로하며 피로 범벅이 되어 널부러져있던 촉수들을 모으려했다.

 

단순히, 그렇게 생각만 했다.

 

촉수들은 조금씩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꿈틀대며 자신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움직이는 그것들을 보고 벤은 충격 속에 휩싸였다. 분명히, 분명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한 문장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왜?

 

천천히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던 촉수들 중 하나는 저 멀리 뻗어나가 도미노 마스크를 주워오기까지 했다. 부들거리며 마치 생명을 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벤은 저게 막 자아를 가진 자의 혼란이란 걸 알고 있었다. 무의식 중에 그것의 움직임을 막으려했지만, 그 움직임은 멎지 않았다.

 

벤은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제 저 녀석은 불만을 가질 거야. 불만을 가지고 나면, 그 불만을 실행하겠지, 힘이 있으니까. 그럼 그 불만을 해소하겠지? 날 죽이고 가족들을 해칠 거야. 아니야, 내가 막아야해, 내가,

 

그 순간, 피로 푹 젖은 그것이, 부들대며 올라오던 그 촉수가. 벤의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

 

벤은 싸해졌다. 동시에 힘이 축 빠졌다. 도대체,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왜 나한테만 이래? 벤은 자아가 있을 그것에게 말했다. 툭, 눈물을 닦는 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고, 해냈다는 듯이 떨어진 그것에게 벤은 물었다.

 

 

괴물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터덜터덜 벤은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궜다.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나서야 벤은 만족하고는 천천히 침대에 주저앉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여전히 촉수는 자신의 품속에 있었다. 앞으로 절대, 절대 다시는 꺼내지 않으리라 벤은 다짐했다. 빗장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과연 될까? 벤은 아직 그걸 생각할 정도로 진정되어있지 못했다.

 

하얗게 질린 자신의 얼굴만이 거울에게서 반사되어 자신을 향했다. 그 허한 눈이 심연 같아, 그만 벤은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형제들이 문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클라우스...? 클라우스! 클라우스의 목소리야! 그들은 벤을 부르고 있었다.

 

“벤? 안에 있.”

“얘들아!! 얘들아, 나 좀 구해줘, 나 좀!!”

“...벤?”

 

벤은 다급하게 문 쪽으로 기어가 문을 세게 두드렸다. 문을 주먹으로 치고 손톱으로 긁었다. 벤은 형제들을 원했다. 형제들이 자신을 살려주기를 윈했다. 자신의 상황은 생각지도 못한 채 벤은 그저 형제들이 자신을 이곳에서 구해주기를 바랬다. 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빛이 되어줄 것은 형제들밖에 없었다. 벤은 작게 흐느끼며 계속, 자신의 형제를 불렀다.

 

“클라우스! 바냐!! 나, 나 좀 구해줘. 나 좀 구해줘, 제발...”

“벤, 무슨 일이야?!”

“클라우스, 나 좀 살려줘, 나 좀 구,”

 

그 순간, 품에서 뻗어 나온 촉수가 벤을 침대 쪽으로 밀어냈다. 벤은 다급하게 손을 뻗으며 버둥거렸지만, 그 거대한 힘에 벤은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손과 발을 있는 힘껏 굴려도 단 한 걸음도 형제들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벤? 벤!”

“얘들아, 얘들아!!”

 

벤은 고함치며 발버둥 쳤다. 문 밖에서는 포고의 목소리와 웅성거리는 형제들의 목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벤의 볼에는 슬픔과 절망이 섞인 눈물만이 흘렀다. 안 돼, 날 혼자 두지 말아줘, 날 버리지 말아줘. 벤은 목이 쉴 때까지 소리를 지르고 눈물 흘렸다.

 

벤은 여태껏 자신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아마, 3일 후였을 것이다. 벤은 그동안 한 번도 밖에 나온 적이 없었고, 밥을 먹으려하거나 서재에 가려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걸 처음으로 수상하다 여긴 사람은 바냐와 클라우스였다.

 

둘은 진지하게 형제들에게 제안했다. 벤이 3일 동안 나오지 않고 있어, 이건 이상해. 항상 우리에게 웃어주던 벤이었잖아, 친절하고, 착했던 베네리노. 그런 벤이 코빼기도 안 보인다고. 하지만 다른 형제들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벤에게 극복의 기회를 주기라도 하는 듯이 말했다. 아니야, 벤은 나올 거야. 우린 믿고 있어.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벤에게 괜찮냐고 물을 생각을 한 사람은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어쩌면 그 간과가, 그 무시가, 그 냉기가 벤을 죽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3일 뒤, 클라우스와 바냐는 이제 강경한 쪽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이 얘기를 들으시면 경기를 일으키듯 피했고,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바냐와 클라우스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

“벤은 형제였잖아!”

“...벤에게 신경 쓰기 싫었던 걸까?”

“...디에고에게 물어봐야겠어.”

 

디에고는 클라우스와 한참 대화를 나눴다. 마지막에 클라우스는 디에고의 멱살을 잡아가며 열띤 토론을 나눴고, 결국 디에고는 벤의 방문 앞에 있었다.

 

“바냐, 루서랑 앨리슨 불러와.”

“알았어.”

“이런 구조는, 어렵지는 않으니까...”

 

디에고가 딸깍거리며 문을 따기 시작했을 때 즈음, 바냐는 루서와 앨리슨을 찾으러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둘을 겨우 만나서 다시 급한 발걸음으로 돌아왔을 때, 울먹이는 클라우스의 고함만이 귀에 가득 들어찼다.

 

“바, 바냐!! 루서, 빨리!!”

 

그들이 벤을 다시 봤을 때, 벤은 두껍고 굳건한, 큰 공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보였다. 그 공이 촉수였다는 점만을 제외하면.

 

루서는 다급하게 하나하나를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안에 있는 것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서로서로 강하게 뭉쳐있었고, 마침내 그 안의 벤이 보였을 때는 그를 감싸고 있던 촉수가 너덜너덜해진 채로 바닥에 전부 꺾여있을 때였다.

 

“벤!!”

 

벤은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어디선가 새근새근 자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벤, 일어나봐. 벤!”

 

몸을 흔드는 형제들의 손에 맞춰 부드럽게, 벤의 몸은 흔들렸다. 그것은 마치 자고 있는 아기의 요람을 흔드는 것만 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벤, 제발 일어나, 응?‘

“무슨 소란이냐, 아이들아.”

“포고, 벤이...!”

 

벤은,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는 고요에 빠져들었다. 그 고요의 소리는 너무나도 조용해, 자신의 심장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듯했다.

 

그래, 벤은 죽었다.

 

 

 

장례식은 조용히 진행되었다, 비록 모두가 상처 입은 장례식이긴 했지만. 벤이 이 사실을 알면, 슬퍼하겠지? 클라우스는 옆에 벤이 있다고 치고 상황을 하나하나 말해주기로 했다. 후두두둑 떨어지는 비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 추웠다. 클라우스는 몸을 더 끌어안았다. 입김이 용오르듯 피어올랐다.

 

벤, 들어봐.

장례식은 개판이었어, 말 그대로. 영감은 또 자기 할 말만 하고 떠났고, 애들끼리는 싸웠고. 개판이 따로 없었지, 암. 너도 봤지? 못 봤을라나?...미안, 지금부터 술 끊을게. 그래도, 나중에 되면 널 불러낼 수 있지 않을까?

엄마가 네 몸에 칼을 댔어. 꺄악! 알아, 그 의미 아닌 거. 부검 했다는 의미지. 부검 결과, 별다른 건 없었어. 왜 죽은 거야? 말 좀 하고 죽지. 왜, 왜 말도 못해주고 갈 정도로 급하게 간 거야, 응? 벤, 말해봐. 왜? 왜?

...나랑 바냐가 주장해서 타살로 사인을 정했어, 이건 타살이야, 벤. 형제들, 영감, 포고, 심지어 엄마까지 네 죽음을 피하고 방치했다고. 난, 난 인정 못해. 자살이라고 했던 형제들이랑 싸워서라도 난 자살로 만들 거야. 무엇보다도 넌, 넌...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놓을 아이가 아니었잖아, 그치?

 

 

 

먼 훗날, 벤은 다시 돌아온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왜 죽은 거야? 벤은 웃어넘겼다. 알 필요 없어, 클라우스. 떼쓰는 클라우스를 옆으로 살짝 밀치며 벤은 약한 미소를 지었다.

 

벤은 그날을 추억하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추웠던 일주일의 낮과 밤을 벤은 끊임없이 되새겼다. 왜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벤도 정확하게 자신의 사인을 몰라서일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벤의 사인은 자살이 맞았다. 벤은 자신을 먹은 것이다. 앞에서 말했지? 괴물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고. 자신의 품속에서 꿈틀거리며 호시탐탐 노리던 괴물에게 먹이를 준 것은 벤 자신이었다.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굳이 탓하자면 아버지를 원망스레 노려볼 뿐인.

 

하지만 촉수는 벤을 죽이지 않았다. 그저 불안해했던 벤이 다른 벤을 죽인 것이다. 처음에는 벤이 그 눈물을 닦아주었다. 힘들어했던 그를 도와주고, 피를 닦아주고, 격려해주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본색을 드러내어 벤을 찌르고, 갈기갈기 찢고, 베고, 자르고, 마지막에는 콱, 심장을 움켜쥐었다. 우뚝 멈춘 심장과 함께 벤의 죽음은 이유 없는 살인이었다.

 

벤은 벤에게 먹혔다. 자신이 자신을 먹은 것, 사인은 그게 다였다.

- 2020. 8. 21 ~ 2020. 9. 25 엄브렐러 아카데미 합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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